택배 상자를 열고 스탠드에 올려둔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어, 이거 어릴 적 아버지 서랍에 있던 그 시계잖아."
올스테인리스 메탈 바디에 각진 디지털 페이스. 누가 봐도 80년대 카시오의 그 얼굴입니다. 그런데 다이얼 인쇄를 자세히 보면 분위기가 묘하게 어긋납니다 — STEP TRACKER(만보계), Bluetooth, ILLUMINATOR(백라이트), WATER WR RESIST. 겉은 옛날 그대로인데 속은 2020년대를 숨겨둔 셈입니다.
한 가지만 미리 밝혀둡니다. 이 리뷰의 제원 수치 — 케이스 크기·두께·무게·방수·배터리·스텝트래커 사양 — 는 모두 제조사 공식 사양 인용입니다. 손에 쥐고 손목에 올려 본 마감·디자인·착용감은 SODY가 직접 확인한 내용이고요. 한 페이지에 알아야 할 정보를 전부 담았습니다.
BRAND & ORIGIN
카시오는 원래 시계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1946년 4월, 도쿄 미타카의 작은 공장 '카시오제작소'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창업자 타다오 카시오와 형제들(타다오·토시오·카즈오·유키오)이 만들던 것은 시계가 아니라 계산기였습니다. 1957년 6월, 세계 최초의 소형 완전 전기식 계산기 '14-A'를 내놓으며 카시오컴퓨터 주식회사가 설립됩니다 — 아버지 시게루가 초대 사장을 맡은, 말 그대로 가족의 회사였습니다.
1972년에는 '카시오 미니'로 세계 최초의 퍼스널 계산기라는 타이틀을 한 번 더 가져갑니다. 그리고 1974년 11월, 이 계산기 회사가 돌연 손목 위로 올라옵니다. 첫 시계 '카시오트론(QW02)'은 그냥 숫자를 보여주는 시계가 아니라, 큰달과 작은달을 스스로 구분하는 세계 최초의 오토 캘린더를 달고 나왔습니다. 매달 1일이면 날짜를 손으로 다시 맞추던 시절에, 시계가 알아서 달력을 계산한 것입니다. 시계를 시계처럼이 아니라 계산기처럼 만든, 지극히 카시오다운 데뷔였다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 — 이 리뷰의 ABL-100은 카시오가 공식적으로 'CASIO VINTAGE' 라인으로 분류하는 모델입니다. 80년대의 그 각진 얼굴을 일부러 그대로 두고, 속에는 가속도 센서로 걸음을 세는 스텝 트래커와 블루투스 자동 시각 보정을 심었습니다(제조사 공식 소개 기준). 카시오트론이 달력 맞추기를 없앴다면, ABL-100은 시간 맞추기를 없앤 셈입니다. 근본의 얼굴에 만보계를 숨긴 건 우연이 아니라, 50년 묵은 가풍입니다.
NOW
VINTAGE 라인
ABL-100 (이 리뷰)
※ 위 연도·사실은 카시오 공식 연혁(world.casio.com/corporate/history)과 공식 제품 페이지(casio.com — ABL-100·VINTAGE 라인) 인용입니다. SODY가 지어낸 서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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